카르발라 전투와 수니·시아의 분열
다른 이름: 수니파와 시아파, 아슈라
우마이야 왕조의 세습에 맞선 알리의 아들 후사인이 카르발라에서 칼리프 야지드의 군대에게 죽었다. 시아파가 뚜렷한 종파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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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년 무아위야가 죽고 아들 야지드가 칼리프가 되자, 알리의 아들이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인 후사인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쿠파 사람들의 부름을 받고 가족과 추종자를 이끌고 가던 그는 유프라테스강 가의 카르발라에서 우마이야 군에게 포위되었고, 이슬람력 무하람 달 10일(680년 10월 10일) 일행 70여 명과 함께 죽었다.
이 비극은 이슬람 공동체를 둘로 가르는 계기가 되었다. 시아파는 알리와 그 자손만을 정당한 지도자(이맘)로 받들며 후사인을 순교자로 기려, 해마다 그날(아슈라)에 추모 의식을 한다. 수니파는 쿠란과 무함마드의 관행(순나)을 따르는 공동체의 합의를 중시해 역대 칼리프를 인정한다. 오늘날 무슬림의 대다수는 수니파이고, 시아파는 이란과 이라크 남부 등에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