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 내전
다른 이름: 제2차 국공 내전, 해방 전쟁, 랴오선·화이하이·핑진 전역
일본이 항복한 뒤 1946년 국민당과 공산당의 전면 내전이 다시 일어났다. 토지 개혁으로 농민을 얻은 공산당이 1948–1949년 세 차례 큰 전역에서 이겼고,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으로 옮겨 갔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자 마오쩌둥은 충칭에서 장제스와 회담해 10월 "쌍십 협정"을 맺었고, 미국의 마셜도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둥베이(만주)와 화북의 일본군 무기와 땅을 두고 다툼이 이어졌고, 1946년 6월 국민당군이 공산당 지역을 공격하면서 전면 내전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미국의 지원과 병력에서 앞선 국민당이 1947년 옌안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공산당은 점령지에서 지주의 땅을 나누는 토지 개혁으로 농민의 지지를 얻었고, 국민당 지역은 부패와 물가 폭등으로 민심이 떠났다. 인민 해방군은 1948년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랴오선·화이하이·핑진의 3대 전역에서 국민당 주력을 무너뜨렸고, 베이핑은 싸움 없이 넘어갔다. 1949년 4월 창장강을 건너 난징을 차지했다.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고, 장제스의 중화민국 정부는 12월 타이베이로 옮겨 갔다. 이로써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완의 중화민국이 각각 중국의 정통을 내세우는 양안 관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