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1270년대 무렵 쓰임 — 1643년 발견, 1971년 4월 21일 아이슬란드로 돌아옴

『왕의 사본』 — 『시의 에다』의 필사본(코덱스 레기우스)

다른 이름: 왕의 사본, 시의 에다, 사이문드의 에다, 옛 에다

1270년대 무렵 아이슬란드에서 신화와 영웅의 옛 시를 모은 필사본 『왕의 사본』이 쓰였다. 「무녀의 예언」·「높은 이의 말」 등 『시의 에다』의 거의 유일한 원천으로, 1643년 스칼홀트 주교 브뤼뇰뷔르가 손에 넣어 덴마크 왕에게 보냈고 1971년 아이슬란드로 돌아왔다.

『왕의 사본』(GKS 2365 4to) 17장 앞면 — 「트림의 노래」의 첫머리. 레이캬비크 아르니 마그누손 연구소
『왕의 사본』(GKS 2365 4to) 17장 앞면 — 「트림의 노래」의 첫머리. 레이캬비크 아르니 마그누손 연구소

Thorsteinn1996 · CC BY-SA 4.0 · 원본

『왕의 사본』(GKS 2365 4to)은 1270년대 무렵 아이슬란드에서 이름 모를 필경사가 쓴 송아지 가죽 필사본으로, 지금 45장이 남았다. 신화의 시 「무녀의 예언」·「높은 이의 말」·「바프트루드니르의 노래」·「그림니르의 노래」·「히미르의 노래」·「로키의 말다툼」·「트림의 노래」 등과 시구르드·브륀힐드·구드룬의 영웅 시가 실려 있다. 오늘날 『시의 에다』라고 부르는 시들은 대부분 이 한 권에만 전하고, 많은 시가 그보다 훨씬 앞선 바이킹 시대에 지어졌다고 본다. 시구르드 이야기 가운데 여덟 장이 빠져 있어 「큰 빈틈」이라 부른다.

1643년 스칼홀트의 주교 브뤼뇰뷔르 스베인손이 이 필사본을 손에 넣고, 11세기 학자 「박식한 사이문드」가 엮었다고 여겨 「사이문드의 에다」라고 불렀다(오늘날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는 1662년 이것을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3세에게 보냈고, 그래서 「왕의 사본(코덱스 레기우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필사본은 300년 넘게 코펜하겐 왕립 도서관에 있었다.

아이슬란드가 독립한 뒤 덴마크에 있던 아이슬란드 필사본을 돌려 달라는 요구가 커졌고, 덴마크가 이를 받아들여 1971년 4월 21일 『왕의 사본』이 『플라테이의 책』과 함께 군함에 실려 레이캬비크에 닿았다. 많은 사람이 항구에 나와 맞았다. 지금은 레이캬비크의 아르니 마그누손 아이슬란드 연구소가 지킨다.

지도에서 보기

127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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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노르웨이 왕국
관련 장소
스칼홀트, 아르니 마그누손 아이슬란드 연구소

관련 인물

  • 브뤼뇰뷔르 스베인손1605년 – 1675년

    관련자 · 아이슬란드 스칼홀트의 루터교 주교·학자. 1643년 『왕의 사본』을 손에 넣었고, 1662년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3세에게 보냈다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북유럽 신화793년 – 1876년

    이미르의 몸으로 지은 세계에서 오딘의 룬, 토르의 모험, 발드르의 죽음을 지나 라그나로크와 세계의 재생까지 — 북유럽 신화를 이야기 순서로 따라가며, 웁살라 신전·오세베르그 배·룬스톤·고스포스 십자가와 스노리의 『에다』, 『왕의 사본』, 바그너의 『반지』를 함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