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
에스파냐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바하마 제도에 닿았다.

John Vanderlyn · Public domain · 원본
15세기 유럽에서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등으로 동방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러나 향신료 같은 동방 물산은 오스만 제국과 이탈리아 상인을 거치며 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에, 직접 아시아로 가는 새 항로를 찾으려 했다. 포르투갈이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길을 개척하는 동안, 제노바 출신의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서쪽으로 건너는 편이 아시아에 더 빨리 닿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의 계획은 포르투갈에서 거절당했으나, 그라나다를 정복해 레콩키스타를 마친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후원했다. 1492년 8월 배 세 척으로 팔로스 항을 떠난 그는 10월 12일 바하마 제도의 한 섬에 닿아 산살바도르라 이름 붙였다. 이어 쿠바와 히스파니올라섬을 탐사했고, 이후 세 번 더 항해했지만 죽을 때까지 그곳을 아시아라고 믿었다.
뒤이어 들어온 에스파냐 정복자들은 아스테카와 잉카 제국을 무너뜨렸다. 유럽에서 들어온 천연두 같은 전염병과 가혹한 노동으로 원주민 인구가 크게 줄었고, 그 노동력을 메우려 아프리카 흑인 노예 무역이 커졌다. 작물·가축·병이 두 세계를 오간 "콜럼버스의 교환"으로 감자·옥수수 등이 세계로 퍼졌다.
유럽 중심의 세계 무역이 시작되고 상업 혁명과 가격 혁명이 일어나,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아메리카에서 온 고추·담배·고구마 등은 훗날 조선에도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