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회의와 빈 체제
다른 이름: 빈 체제, 정통주의, 신성 동맹
나폴레옹 전쟁 뒤 유럽 열강이 빈에 모여 프랑스 혁명 이전의 질서를 되살리기로 했다. 메테르니히가 이끈 이 보수 체제(빈 체제)는 자유주의·민족주의 운동을 억눌렀다.

After Jean-Baptiste Isabey · CC BY-SA 3.0 · 원본
1814년 9월부터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의 주도로 유럽 각국 대표가 빈에 모였다. 회의는 혁명 이전의 왕조와 영토를 되살린다는 정통주의와 강대국 사이의 세력 균형을 원칙으로 삼았다. 각국의 이해가 엇갈려 회의가 길어지자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나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생겼다. 1815년 6월 최종 의정서가 조인되었다.
프랑스에는 부르봉 왕조가 돌아왔다(루이 18세). 러시아는 폴란드 대부분을, 프로이센은 라인란트와 작센 일부를, 오스트리아는 롬바르디아·베네치아를 얻었고 영국은 몰타·케이프 식민지·실론을 차지했다. 독일에는 39개 나라의 독일 연방이 생겼고, 벨기에는 네덜란드에 합쳐졌으며 스위스는 영세 중립국이 되었다. 민족의 뜻은 고려되지 않았다.
알렉산드르 1세가 제안한 신성 동맹과 영국·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의 4국 동맹(뒤에 프랑스가 들어와 5국 동맹)이 이 질서를 지켰다. 독일 대학생의 부르셴샤프트 운동, 에스파냐·이탈리아의 혁명을 눌렀으나, 그리스 독립과 1830년 7월 혁명으로 흔들리다 1848년 혁명으로 메테르니히가 쫓겨나며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