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교조 신원 운동
다른 이름: 보은 집회, 삼례 집회
동학교도들이 처형된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동학을 인정해 달라며 공주·삼례 집회, 복합 상소, 보은 집회를 열었다. 보은 집회에서는 "척왜양창의"를 내걸었다.
최제우가 1864년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된 뒤에도 동학은 최시형의 포접제 조직을 따라 삼남 지방에 퍼졌다. 지방관과 아전은 동학을 금한다는 이유로 교도의 재산을 빼앗곤 했다. 교도들은 교조의 죄를 벗겨(신원) 동학을 공인받고 탄압을 멈추게 하려 했다.
1892년 10월 공주 집회와 11월 삼례 집회에서 충청·전라 감사에게 교조 신원과 탐관오리의 침탈 금지를 요구했다. 1893년 2월에는 교도 대표들이 서울 궁궐 앞에 엎드려 상소했으나(복합 상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93년 3월 충청도 보은에 2만여 명이 모였고, 같은 때 전라도 금구(원평)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보은 집회는 "척왜양창의"(왜와 서양을 물리치고 의를 일으킨다)와 탐관오리 숙청을 내걸어, 종교 운동이 사회·정치 운동으로 바뀌었다. 정부는 어윤중을 양호 선무사로 보내 해산시켰다.
교조 신원 운동으로 동학 조직이 넓게 이어졌고, 이듬해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의 바탕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