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53년 6월 16일 – 17일

동독 6·17 봉기

다른 이름: 1953년 동독 봉기, 6월 17일 봉기

동베를린 건설 노동자들의 파업이 동독 전역의 봉기로 번졌다. 소련군 전차가 출동해 진압했고, 서독은 6월 17일을 "독일 통일의 날"로 기념했다.

동베를린 거리의 소련군 전차 — 1953년 6월 17일, 독일 연방 기록 보관소 (사진가 모름)
동베를린 거리의 소련군 전차 — 1953년 6월 17일, 독일 연방 기록 보관소 (사진가 모름)

Bundesarchiv, B 145 Bild-F005191-0040 / o. Ang. · CC BY-SA 3.0 de · 원본

스탈린이 죽은 뒤에도 동독 정부는 노동자의 작업 할당량(노르마)을 10% 올린 결정을 거두지 않았다. 1953년 6월 16일 동베를린 스탈린 대로의 건설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행진했고, 이튿날인 17일 동독 곳곳 700여 곳에서 100만 명 넘게 파업과 시위에 나섰다. 요구는 할당량 철회에서 정부 퇴진과 자유선거로 커졌다.

소련군이 계엄을 선포하고 전차를 투입해 봉기를 꺾었다. 확인된 사망자는 55명 안팎이고 1만 명 넘게 체포되었다. 울브리히트는 오히려 권력을 굳혔다. 서독은 이듬해부터 1990년까지 6월 17일을 공휴일 "독일 통일의 날"로 삼았다.

지도에서 보기

195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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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동독
소련 — 최고 지도자 스탈린 → 최고 지도자 흐루쇼프
관련 장소
베를린

관련 인물

  • 발터 울브리히트1893년 – 1973년

    관련자 ·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SED)의 지도자(1950–1971). 소련식 사회주의를 세웠고 1961년 베를린 장벽을 쌓았다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독일의 분단과 통일1945년 – 1990년

    포츠담 회담에서 1990년 10월 3일까지 — 네 나라에 나뉘어 점령된 독일이 동서로 갈라졌다가 45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