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분단과 통일
포츠담 회담에서 1990년 10월 3일까지 — 네 나라에 나뉘어 점령된 독일이 동서로 갈라졌다가 45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되기까지

Bundesarchiv, Bild 183-1990-1003-400 / Peer Grimm · CC BY-SA 3.0 de · 원본
포츠담 회담에서 1990년 10월 3일까지 — 네 나라에 나뉘어 점령된 독일이 동서로 갈라졌다가 45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되기까지

Bundesarchiv, Bild 183-1990-1003-400 / Peer Grimm · CC BY-SA 3.0 de · 원본
트루먼·스탈린·처칠(뒤에 애틀리)이 포츠담에서 패전 독일의 처리를 정했다. 회담 중 미·영·중이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냈다.
미·영·프·소 네 나라가 세운 국제 군사 재판소가 나치 독일의 지도자들을 침략 전쟁과 전쟁 범죄, 인도에 반한 죄로 재판했다. 12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미국이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봉쇄 정책(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하고, 서유럽 부흥을 위한 대규모 원조(마셜 계획)를 내놓았다. 냉전이 본격화했다.
미·영·프 점령 지역이 망가진 라이히스마르크 대신 도이치마르크를 들였다. 물자가 다시 가게에 나오며 경제가 살아났지만, 소련은 베를린 봉쇄로 맞섰고 독일 분단이 굳어졌다.
소련이 서베를린으로 가는 육로와 물길을 막자, 미국과 영국이 11개월 동안 비행기로 생필품을 날랐다(베를린 공수). 이듬해 독일은 동·서로 갈라졌다.
서방 점령 지역의 대표들이 본에서 기본법을 만들어 독일 연방 공화국이 들어섰다. 9월 아데나워가 첫 총리가 되었다.
소련 점령 지역에 독일 민주 공화국이 들어섰다. 수도는 동베를린, 실권은 울브리히트가 이끈 사회주의 통일당(SED)이 쥐었다.
동베를린 건설 노동자들의 파업이 동독 전역의 봉기로 번졌다. 소련군 전차가 출동해 진압했고, 서독은 6월 17일을 "독일 통일의 날"로 기념했다.
서독이 주권을 되찾고 NATO에 가입하자, 닷새 뒤 소련과 동독 등 동유럽 나라들이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만들었다. 두 독일은 맞선 두 군사 동맹의 최전선이 되었다.
동독이 하룻밤 사이에 동·서 베를린 사이에 철조망을 치고 장벽을 쌓았다. 베를린 장벽은 냉전과 분단의 상징이 되었다.
장벽이 선 지 2년 뒤 서베를린을 찾은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쇠네베르크 구청 앞에 모인 수십만 시민에게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라고 연설하며 서베를린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서독 총리 브란트가 바르샤바 게토 봉기 기념비 앞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나치 독일의 범죄를 사죄하는 상징이 되었고, 같은 날 폴란드와 국경을 인정하는 조약을 맺었다.
브란트 정부의 동방 정책 끝에 동서독이 기본 조약을 맺어 서로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고 상주 대표부를 두었다. "접근을 통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기본 조약에 따라 동독과 서독이 같은 날 유엔의 133번째·134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남북한은 1991년 같은 방식으로 함께 가입했다.
헝가리 쇼프론 근처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열린 평화 집회 때 잠시 열린 국경 문으로 동독 사람 수백 명이 서방으로 넘어갔다. 철의 장막에 처음 큰 구멍이 났다.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의 월요 기도회 뒤 시민들이 "우리가 인민이다"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10월 9일 약 7만 명이 모였는데도 정권이 무력을 쓰지 않으면서 평화 혁명의 고비를 넘었다.
SED 정치국 대변인 샤보프스키가 생중계 기자 회견에서 새 출국 규정이 "지금 당장" 시행된다고 잘못 알렸다. 소식을 들은 동베를린 시민들이 검문소로 몰려갔고, 그날 밤 장벽이 열렸다.
동독이 국경을 열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냉전 종식의 상징이 되었다.
동독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자유 선거로 인민 의회를 뽑았다. 빠른 통일을 내건 "독일을 위한 동맹"이 48%를 얻어 이겼다.
서독 마르크가 동독의 법정 화폐가 되었다. 임금과 연금은 1대 1로 바꾸어 주었지만, 경쟁력을 잃은 동독 기업이 무너지며 실업이 크게 늘었다.
두 독일과 미·소·영·프 네 나라가 모스크바에서 "독일에 관한 최종 해결 조약"에 서명했다. 전승국의 권리가 끝나고 통일 독일은 온전한 주권을 얻었다.
동독이 서독에 편입되며 41년 만에 독일이 다시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