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95년 8월 – 1896년 2월 (단발령 1895년 11월 15일)(음력)
을미개혁과 단발령
을미사변 뒤 들어선 김홍집 내각이 태양력 사용, 건양 연호, 종두법, 소학교 설립과 함께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을 내렸다.

A. Henry Savage-Landor · Public domain · 원본
삼국 간섭으로 일본의 힘이 약해지자 조선은 러시아에 기대려 했고, 일본은 을미사변을 일으켜 친러 세력을 몰아낸 뒤 개혁을 다시 밀어붙였다(3차 갑오개혁, 을미개혁). 1895년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삼아 태양력을 쓰고, "건양"이라는 연호를 세웠다. 종두법을 실시하고 소학교를 세웠으며 우편 사무를 다시 열었다. 서울에 친위대, 지방에 진위대를 두었다.
단발령은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를 내세운 유생과 백성의 큰 반발을 불렀다. 최익현은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어도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버텼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분노한 유생들이 을미의병을 일으켰고, 이듬해 아관파천으로 김홍집 내각이 무너지면서 개혁은 중단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