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19년 2월 8일
2·8 독립 선언
도쿄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조선 청년 독립단을 만들어 조선 기독교 청년 회관에서 독립 선언서를 발표했다. 3·1 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Korean Young People's Independence Organization (조선청년독립단; 朝鮮靑年獨立團) · Public domain · 원본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 자결주의를 내세우자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이 움직였다. 1918년 상하이에서 여운형 등이 만든 신한 청년당은 김규식을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로 보냈고, 만주·연해주의 독립운동가들은 대한 독립 선언(무오 독립 선언)을 발표했다. 고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독살설이 퍼진 것도 민심을 들끓게 했다.
1919년 2월 8일 도쿄 유학생 600여 명이 독립 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하고 일본 정부와 각국 공사관에 보냈다. 주동자들은 체포되었으나 송계백 등이 선언서를 가지고 국내로 들어와 3·1 운동 준비에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