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쌀 소동
다른 이름: 쌀 소동, 米騒動
쌀값이 치솟자 1918년 여름 도야마현 어촌의 여성들에게서 시작된 폭동이 전국으로 번졌고, 데라우치 내각이 물러나 하라 다카시의 정당 내각이 들어섰다.

Unknown, originally published in Asahi Shimbun · Public domain · 원본
제1차 세계 대전의 호황으로 물가가 오르고 도시 인구가 늘었는데, 1918년 시베리아 출병을 앞두고 상인과 지주가 쌀을 사들이자 쌀값이 1년 사이 두 배 넘게 뛰었다. 7월 하순 도야마현 우오즈 등 어촌의 여성들이 쌀의 외지 반출을 막아 나섰고, 이 소식이 신문으로 퍼지며 8월에는 도쿄·오사카 등 전국 수백 곳에서 쌀가게와 부자의 집을 습격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진압했다.
책임을 진 조선 총독 출신 데라우치 마사타케 내각이 9월에 물러나고, 입헌정우회 총재 하라 다카시가 대부분 각료를 당원으로 채운 정당 내각을 세웠다. 일본은 식량 부족을 식민지에서 메우려 해, 1920년부터 조선에서 산미 증식 계획을 펴 쌀을 일본으로 대량으로 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