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1540년 9월 27일

예수회 창설

다른 이름: 예수회, 제수이트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가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의 예수회를 인가했다. 예수회는 교육과 해외 선교로 가톨릭 개혁(반종교 개혁)의 선봉이 되었다.

교황 바오로 3세가 예수회를 인가하는 장면 — 도밍구스 다 쿠냐의 그림, 1640년 무렵 (포르투갈 코임브라 신대성당)
교황 바오로 3세가 예수회를 인가하는 장면 — 도밍구스 다 쿠냐의 그림, 1640년 무렵 (포르투갈 코임브라 신대성당)

Domingos da Cunha · Public domain · 원본

부상으로 군인의 길을 접은 에스파냐의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는 『영신 수련』을 쓰고, 1534년 파리에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등 동료들과 청빈·정결을 서원했다. 1540년 9월 27일 바오로 3세의 교서로 인가된 예수회는 교황에 대한 특별한 순명을 맹세하고 군대처럼 엄격한 규율을 갖췄다.

예수회는 유럽 곳곳에 학교를 세워 신교로 기운 지역을 되찾는 데 힘썼고, 대항해 시대의 바닷길을 따라 아시아·아메리카로 선교사를 보냈다. 하비에르는 1549년 일본에 크리스트교를 전했고, 마테오 리치는 명에서 『천주실의』를 펴냈다. 그 책은 이수광의 『지봉유설』(1614)에 소개되는 등 조선 서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540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교황령
관련 장소
로마

관련 인물

  •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1491년 – 1556년

    창제자 · 에스파냐 바스크 출신의 군인이자 성직자. 1534년 동료들과 예수회를 만들어 1540년 교황의 인가를 받고 초대 총장이 되었다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종교 개혁과 절대 왕정1517년 – 1796년

    루터의 95개조에서 예카테리나 2세까지 — 갈라진 크리스트교 세계의 종교 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나고, 왕권신수설·상비군·관료제·중상주의를 앞세운 절대 왕정과 동유럽의 계몽 전제 군주가 주권 국가의 세력 균형을 다투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