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이의 망원경 관측과 종교 재판
다른 이름: 갈릴레이 재판, 별의 전령, 그래도 지구는 돈다
1610년 갈릴레이는 손수 만든 망원경으로 달의 산과 목성의 위성을 관측해 지동설을 뒷받침했으나, 1633년 로마 종교 재판에서 지동설을 버리겠다고 맹세해야 했다.

Joseph-Nicolas Robert-Fleury · Public domain · 원본
파도바 대학 교수 갈릴레이는 1609년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배율을 높인 망원경을 직접 만들었다. 1610년 『별의 전령』에서 달 표면의 산과 구덩이, 목성 둘레를 도는 네 위성, 은하수가 수많은 별이라는 것을 알렸고, 뒤에 금성의 위상 변화와 태양의 흑점도 관측했다. 하늘이 완전하고 모든 것이 지구를 돈다는 옛 우주관과 맞지 않는 증거들이었다.
교회는 1616년 지동설을 가르치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에서 지동설을 사실상 옹호했다. 이듬해 로마 종교 재판소에 불려 가 6월 22일 지동설을 버리겠다고 맹세했고, 피렌체 근처 아르체트리에서 연금된 채 여생을 보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는 이야기는 뒤에 생긴 전설이다. 그는 연금 중에도 낙하 법칙을 다룬 『새로운 두 과학』(1638)을 네덜란드에서 펴냈다.
갈릴레이는 실험과 관측, 수학으로 자연을 탐구하는 근대 과학의 방법을 세웠다. 가톨릭교회는 1992년에야 재판이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