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24–1525년

독일 농민 전쟁

다른 이름: 농민 전쟁, 12개조

1524–1525년 남·중부 독일의 농민들이 종교 개혁에 기대어 농노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봉기했으나 제후군에 진압되었고, 루터는 제후 편에 섰다.

1525년 프랑켄하우젠에서 무너지는 뮌처의 농민군 — 오토 에밀 라우의 그림, 1890년
1525년 프랑켄하우젠에서 무너지는 뮌처의 농민군 — 오토 에밀 라우의 그림, 1890년

Otto Emil Lau · Public domain · 원본

영주의 부담이 무거워지던 남서 독일에서 1524년 여름 농민들이 들고일어나 이듬해 슈바벤·프랑켄·튀링겐·티롤로 번졌다. 1525년 3월 메밍겐에서 나온 「12개조」는 성직자를 마을이 뽑을 권리, 농노제 폐지, 부당한 세금과 공유지 침탈의 중지를 성경에 근거해 요구했다. 튀링겐에서는 급진 개혁가 토마스 뮌처가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자며 농민군을 이끌었다.

처음에 양쪽을 달래던 루터는 봉기가 번지자 「살인하고 약탈하는 농민 무리에 반대하여」를 써서 제후들에게 진압을 촉구했다. 1525년 5월 15일 프랑켄하우젠 전투에서 뮌처의 농민군이 무너졌고 뮌처는 처형되었다. 죽은 농민은 약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루터파 종교 개혁은 제후가 이끄는 "위로부터의" 개혁이 되었고, 급진파는 재세례파로 이어졌다. 같은 무렵 조선에서는 기묘사화 뒤 훈구 세력이 다시 조정을 잡고 있었다.

지도에서 보기

1524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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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신성 로마 제국

관련 인물

  • 토마스 뮌처1525년

    주도자 · 독일의 급진 종교 개혁가. 독일 농민 전쟁에서 튀링겐의 농민군을 이끌다 프랑켄하우젠에서 패해 처형되었다

  • 마르틴 루터1483년 – 1546년

    관련자 · 독일의 신학자. 1517년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믿음으로만"·"성경으로만"을 내세웠으며 성경을 독일어로 옮겼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517년 종교 개혁
이후 사건
1526년 모하치 전투와 빈 포위

이 사건이 든 테마

  • 종교 개혁과 절대 왕정1517년 – 1796년

    루터의 95개조에서 예카테리나 2세까지 — 갈라진 크리스트교 세계의 종교 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나고, 왕권신수설·상비군·관료제·중상주의를 앞세운 절대 왕정과 동유럽의 계몽 전제 군주가 주권 국가의 세력 균형을 다투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