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치 전투와 빈 포위
다른 이름: 제1차 빈 포위, 모하치 전투
오스만의 술레이만 1세가 모하치 전투에서 헝가리군을 무찌르고 3년 뒤 합스부르크의 빈을 포위했다. 오스만 제국이 유럽 깊숙이 들어와 전성기를 맞았다.

1584 · Public domain · 원본
1520년 즉위한 술레이만 1세는 1521년 베오그라드, 1522년 로도스섬을 차지했다. 1526년 8월 29일 도나우강 가의 모하치에서 오스만군은 헝가리군을 두 시간 만에 무찔렀고, 헝가리 왕 러요시 2세가 달아나다 죽었다. 헝가리 왕위를 두고 합스부르크 가문과 다툼이 벌어지자 술레이만은 1529년 가을 오스트리아의 빈을 에워쌌으나, 늦은 계절과 비로 큰 대포를 가져오지 못해 한 달이 못 되어 물러났다. 헝가리는 뒤에 셋으로 나뉘었다.
술레이만은 프랑스와 손잡고 합스부르크의 카를 5세와 맞섰는데, 카를 5세가 오스만을 막느라 독일의 루터파를 누르지 못한 것이 종교 개혁이 살아남는 한 이유가 되었다. 1538년 프레베자 해전으로 지중해를 장악했고, 법전을 정비해 "입법자"(카누니)라 불렸다. 건축가 시난이 이스탄불에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