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27년 5월
근우회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들이 신간회의 자매단체로 근우회를 만들었다. 여성 차별 철폐와 여성의 단결을 내걸고 전국에 지회를 두었다.
1920년대 여성 운동은 조선 여자 교육회 같은 계몽 단체와, 여성 해방을 계급 해방과 함께 보던 사회주의 여성 단체로 나뉘어 있었다. 민족 협동 전선으로 신간회가 출범하자, 여성계도 1927년 5월 김활란 같은 기독교 계열 민족주의 여성과 정칠성·허정숙 같은 사회주의 여성이 함께 근우회를 만들었다.
근우회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법률적 일체 차별 철폐", "봉건적 인습과 미신 타파", "조혼 폐지 및 결혼의 자유", "인신매매 및 공창 폐지", "부인 노동의 임금 차별 철폐" 등을 행동 강령으로 삼았다. 기관지 "근우"를 펴내고 국내외에 지회를 두어 강연회와 야학을 열었으며,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뒤 서울의 여학생 시위에도 관여했다.
신간회 해소 무렵 내부 갈등으로 1931년 해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