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인쇄술
다른 이름: 활판 인쇄술, 42행 성서, 구텐베르크 성서
1450년 무렵 독일 마인츠의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와 인쇄기로 책을 대량으로 찍는 방법을 펼쳐 『42행 성서』를 찍었다. 인쇄술은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을 퍼뜨렸다.

NYC Wanderer (Kevin Eng) · CC BY-SA 2.0 · 원본
그때까지 유럽의 책은 수도사들이 손으로 베낀 비싼 필사본이었다. 마인츠의 금속 세공인 구텐베르크는 납·주석·안티몬 합금으로 같은 모양의 활자를 쉽게 부어 내는 주형, 금속에 잘 묻는 기름 잉크, 포도즙 짜는 틀을 고친 나사식 인쇄기를 함께 갖추었다. 그는 이 방법으로 1455년 무렵 『42행 성서』를 180부쯤 찍었다.
인쇄술은 빠르게 퍼져 1500년까지 유럽의 200곳이 넘는 도시에 인쇄소가 생겼고, 책값이 떨어져 지식이 성직자와 귀족 밖으로 퍼졌다. 고전과 인문주의자의 저작이 널리 읽혔고, 1517년 뒤 루터의 글이 몇 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진 것도 인쇄술 덕분이었다. 라틴어 대신 각 나라 말로 된 책이 늘어 국민 문화의 바탕이 되었다.
금속 활자 인쇄는 고려가 먼저였다. 1234년 무렵 『상정고금예문』을 금속 활자로 찍었다는 기록이 있고,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찍은 『직지심체요절』은 『42행 성서』보다 70여 년 앞선다. 조선은 1403년 계미자를 만들고 세종 때 갑인자(1434)로 다듬었다. 그러나 한국의 금속 활자는 나라와 절이 필요한 책을 적게 찍는 데 쓰였고, 한자가 수만 자에 이르러 활자를 많이 만들어야 했다. 26자 알파벳에 상업 출판이 결합한 유럽에서는 인쇄가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