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르네상스와 에라스뮈스
다른 이름: 크리스트교 인문주의, 우신 예찬, 유토피아
15세기 플랑드르의 회화에서 시작된 알프스 북쪽의 르네상스는 성서와 초기 교회로 돌아가자는 크리스트교 인문주의로 나아가, 에라스뮈스가 『우신 예찬』(1511)으로 교회를 풍자했다.

Hans Holbein the Younger · Public domain · 원본
플랑드르의 얀 반 에이크는 유화 기법을 다듬어 「헨트 제단화」(1432)처럼 세밀하고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고, 독일의 뒤러는 이탈리아 미술을 받아들여 판화로 널리 알렸다. 알프스 북쪽의 인문주의는 고전 연구를 성서와 초기 교회 연구로 돌려 교회와 사회를 비판하는 경향이 강했다(크리스트교 인문주의).
로테르담 출신의 에라스뮈스는 『우신 예찬』(1511)에서 성직자의 위선과 형식적인 신앙을 풍자하고, 1516년 그리스어 신약 성서를 펴냈다. 같은 해 잉글랜드의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사유 재산이 없는 이상 사회를 그려 인클로저로 쫓겨나는 농민의 현실을 꼬집었다. "에라스뮈스가 알을 낳고 루터가 그것을 깠다"는 말처럼, 이들의 비판은 이듬해 시작된 종교 개혁의 바탕이 되었다. 이 무렵 조선은 중종반정(1506) 뒤 조광조 등 사림이 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