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 서사시의 성립
다른 이름: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기원전 8세기 무렵 소아시아 서해안의 이오니아에서 트로이 전쟁을 노래한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노래한 『오디세이아』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오래 입으로 전해 오던 노래가 갓 들어온 그리스 문자로 적히면서 서양 문학의 첫머리가 되었다.

Public domain · 원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고대부터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전해 온다. 두 서사시는 이오니아 방언이 중심인 6보격의 시로, 기원전 8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 무렵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보는 학자가 많다(『오디세이아』가 조금 늦다). 1920 – 30년대 미국의 학자 밀먼 패리가 「발 빠른 아킬레우스」 같은 정해진 수식어구를 연구해, 두 서사시가 글 없이 대대로 입으로 지어 부르던 노래의 전통에서 나왔음을 밝혔다. 이 노래들이 기원전 8세기 무렵 페니키아 문자를 고쳐 만든 그리스 알파벳으로 적히게 되었다.
호메로스가 누구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앞을 보지 못한 시인이라는 전승이 있고, 스미르나·키오스 등 여러 도시가 그의 고향이라고 내세웠다. 한 사람이 두 서사시를 모두 지었는지도 고대부터 의견이 갈렸다. 아테네에서는 기원전 6세기 판아테나이아 축제에서 서사시를 낭송했고, 지금처럼 각각 24권으로 나눈 것은 헬레니즘 시대 알렉산드리아의 학자들이다.
두 서사시는 그리스인의 교과서가 되어 신과 영웅의 모습, 명예와 귀향의 가치를 전했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거쳐 서양 문학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 서사시가 그린 세계는 미케네 시대의 기억과 시인이 살던 시대의 모습이 섞여 있어, 그대로 역사로 읽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