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화강 봉기
다른 이름: 제2차 광저우 봉기, 황화강 72열사, 3·29 광저우 봉기
1911년 4월 27일 황싱이 이끈 동맹회 결사대가 광저우의 양광 총독 관아를 쳤으나 하루 만에 무너졌다. 죽은 이들을 황화강에 묻어 「72열사」라 불렀고, 이 죽음은 반년 뒤의 혁명에 불을 지폈다.

Pedist · CC BY-SA 3.0 · 원본
거듭된 실패 끝에 동맹회는 1911년 봄 광저우에서 가장 큰 봉기를 준비했다. 해외 화교에게서 돈을 모으고, 일본과 동남아에서 젊은 결사대원들이 광저우에 숨어 들어왔다. 그러나 계획이 새어 나가 날짜를 거듭 미루다가, 4월 27일(음력 3월 29일) 황싱이 결사대 100여 명을 이끌고 총독 관아로 쳐들어갔다.
총독은 달아났고 결사대는 거리에서 청군과 싸우다 무너졌다. 황싱은 손가락 두 개를 잃고 겨우 빠져나왔다. 사람들은 흩어진 주검을 거두어 광저우 북쪽 황화강에 묻었고, 처음 72명으로 알려져 「황화강 72열사」라 불렀다. 결사대원 린줴민이 아내에게 남긴 편지는 뒤에 널리 읽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