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37년

황국 신민화 정책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내선일체"를 내걸고 한국인을 일왕에게 충성하는 "황국 신민"으로 만들려 했다. 황국 신민 서사 암송과 신사 참배, 궁성 요배를 강요했다.

서울 남산의 조선 신궁 — 신사 참배를 강요한 곳
서울 남산의 조선 신궁 — 신사 참배를 강요한 곳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1937년 중일 전쟁 뒤 미나미 지로 총독은 일본과 조선은 하나이고(내선일체) 조상이 같다(일선동조론)며 한국인의 민족 정체성을 없애려 했다. 학교와 관공서에서 "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이다"로 시작하는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게 하고, 면마다 신사를 세워 참배하게 했으며, 일왕이 사는 도쿄 쪽을 향해 절하는 궁성 요배를 시켰다. 신사 참배를 거부한 기독교 학교는 문을 닫았다.

제3차 조선 교육령(1938)으로 조선어를 선택 과목으로 돌려 사실상 가르치지 못하게 했고, 1941년 소학교를 "황국 신민의 학교"라는 뜻의 국민학교로 바꾸었으며, 제4차 조선 교육령(1943)으로 조선어 교육을 없앴다. 1940년에는 조선일보·동아일보를 폐간했다.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1936)과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1941)으로 독립운동가를 감시하고 가두었다.

지도에서 보기

193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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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제강점기 조선 —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
일본 · 통치국 — 쇼와 일왕
관련 장소
조선 총독부 청사 터

관련 인물

  • 미나미 지로1874년 – 1955년

    주도자 · 제7대 조선 총독. 내선일체를 내걸고 황국 신민화 정책과 창씨개명을 밀어붙였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37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이 사건이 든 테마

  •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1937년 – 1945년

    전시 동원과 수탈, 독립운동의 군대, 카이로 선언에서 광복까지

  • 교육 기관의 변천372년 – 1943년

    태학과 국학, 국자감과 성균관에서 근대 학교와 조선 교육령까지 — 관리를 기르는 관학과 그 빈자리를 채운 사학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