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시 동원과 수탈, 독립운동의 군대, 카이로 선언에서 광복까지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전시 동원과 수탈, 독립운동의 군대, 카이로 선언에서 광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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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침략 전쟁을 벌이며 군 위안소를 만들고 한국 등 여러 나라의 여성을 강제로 동원해 일본군 "위안부"로 삼았다. 여성들은 큰 고통과 인권 유린을 당했다.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내선일체"를 내걸고 한국인을 일왕에게 충성하는 "황국 신민"으로 만들려 했다. 황국 신민 서사 암송과 신사 참배, 궁성 요배를 강요했다.
일제가 국가 총동원법을 만들어 한국의 사람과 물자를 침략 전쟁에 마음대로 끌어다 썼다. 쌀과 놋그릇까지 거두어 가고 젊은이를 전쟁터와 공장으로 끌고 갔다.
김원봉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커우에서 조선 의용대를 만들었다. 중국 관내에서 처음 생긴 한국인 무장 부대다.
일제가 한국인을 일본·사할린·남양 군도 등의 탄광·군수 공장·비행장 공사에 강제로 끌어가고, 전쟁 막바지에는 징병으로 전쟁터에 내보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해 유럽과 아시아·태평양에서 벌어진 인류 최대의 전쟁.
일제가 한국인에게 일본식 성과 이름으로 바꾸게 했다. 따르지 않으면 학교 입학을 막고 식량 배급에서 빼는 등 불이익을 주었다.
충칭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총사령관은 지청천이었고, 1942년 조선 의용대가 합류했다.
화북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김두봉을 중심으로 조선 독립 동맹을 만들고,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를 조선 의용군으로 개편했다.
일제가 조선어 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몰아 회원들을 잡아 가두었다. 이윤재·한징이 옥중에서 숨지고 학회는 해산되었다.
미국·영국·중국 정상이 카이로에서 회담하고,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유 독립시키기로 한 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처음 약속했다.
여운형이 일제의 패망과 광복을 내다보고 국내에서 비밀 단체 조선 건국 동맹을 만들었다. 광복 직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바탕이 되었다.
한국광복군이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손잡고 특수 훈련을 받으며 국내로 들어갈 작전을 준비했다. 일본이 먼저 항복해 실행하지 못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한국이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군과 소련군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