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국민당 창당과 청년의 맹세
다른 이름: 청년의 맹세, 숨파 프무다
수카르노가 반둥에서 인도네시아 국민당을 세워 네덜란드에 대한 비협조와 완전 독립을 내걸었다. 이듬해 청년 대회는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를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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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는 20세기 초 부디 우토모(1908)와 이슬람 동맹(사레캇 이슬람, 1912)이 민족 운동을 열었고, 1920년 결성된 공산당의 봉기(1926–1927)는 진압되었다. 1927년 7월 4일 반둥 공과 대학 출신 수카르노가 인도네시아 국민당을 세워 네덜란드에 협조하지 않는 대중 운동으로 독립을 이루자고 했다.
1928년 10월 28일 바타비아(오늘의 자카르타)의 제2차 청년 대회는 여러 섬과 종족의 청년들이 하나의 조국 인도네시아,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 인도네시아어를 맹세했다(청년의 맹세). 이 자리에서 뒷날 국가가 된 "인도네시아 라야"가 처음 연주되었다. 수카르노는 1929년 체포되어 법정에서 식민 지배를 고발했고, 이후 오랫동안 유배되었다. 그는 일본 점령기를 거쳐 1945년 8월 17일 하타와 함께 독립을 선언했고, 네덜란드와의 전쟁 끝에 1949년 독립을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