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623년 3월 13일(음력)

인조반정

서인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왕으로 세웠다(인조). 친명배금으로 돌아서며 후금과의 관계가 나빠졌다.

동궐도 — 반정군이 들이친 창덕궁을 그린 1820년대 그림
동궐도 — 반정군이 들이친 창덕궁을 그린 1820년대 그림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광해군은 북인과 함께 정치를 이끌며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폈다. 그러나 이복동생 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 대비를 서궁(경운궁)에 가둔 일(폐모살제)과 명의 은혜를 저버린 외교가 서인에게 반정의 명분이 되었다.

1623년 3월 13일 밤 김류·이귀·최명길 등 서인과 능양군이 이괄 등의 군사와 함께 창의문을 지나 창덕궁에 들어갔다. 능양군은 인목 대비의 명으로 즉위했고, 광해군은 강화도로 쫓겨났다가 뒤에 제주도로 옮겨졌다. 북인의 이이첨·정인홍 등은 처형되었다.

이후 서인이 정권을 잡고 남인 일부와 함께 정치를 이끌었다. 친명배금으로 바뀐 외교는 정묘호란을 불렀고, 공을 나누는 데 불만을 품은 이괄은 이듬해 난을 일으켰다(이괄의 난, 1624).

지도에서 보기

162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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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인조
관련 장소
창덕궁

관련 인물

  • 인조1595년 – 1649년

    주도자 · 조선 제16대 왕. 반정으로 즉위했고, 정묘·병자 두 호란을 겪고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 광해군1575년 – 1641년

    관련자 · 조선 제15대 왕. 대동법을 시작하고 명·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폈으나 인조반정으로 쫓겨났다

  • 최명길1586년 – 1647년

    참여자 · 인조반정에 공을 세운 서인. 병자호란 때 청과 화의를 맺자는 주화론을 이끌었다. 양명학에도 밝았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623년 승정원일기
이후 사건
1624년 광주 남한산성

관련 작품

  • 방송: 벌거벗은 한국사 제32회 「임진왜란의 영웅 광해군은 왜 쫓겨났나?」방송 · 2022 · 계승범 · tvN STORY

이 사건이 든 테마

  • 붕당 정치의 전개1498년 – 1863년

    사화에서 세도 정치까지 — 사림의 붕당이 공존과 견제에서 환국·일당 전제로, 탕평을 거쳐 몇 가문의 독점으로 바뀐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