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05년 – 1911년

이란 입헌 혁명

다른 이름: 이란 입헌 운동, 페르시아 입헌 혁명

카자르 왕조의 전제와 열강의 이권 침탈에 맞서 상인·성직자·지식인이 일어나 헌법과 의회를 얻었다. 그러나 영국과 러시아의 간섭으로 좌절되었다.

타브리즈 아르그 성 안의 입헌파 포대 — 1909년
타브리즈 아르그 성 안의 입헌파 포대 — 1909년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카자르 왕조는 영국과 러시아에 이권을 잇달아 넘기며 빚을 졌다. 러일 전쟁(1904–1905)에서 입헌 국가 일본이 전제 국가 러시아를 이기고 러시아에서 1905년 혁명이 일어나자, 이란 사람들은 헌법이 나라를 강하게 한다고 여겼다. 1905년 말부터 상인과 성직자가 시위와 농성을 벌였고, 1906년 여름에는 수많은 사람이 테헤란의 영국 공사관에서 농성했다.

1906년 8월 무자파르 앗딘 샤가 헌법 제정을 약속해 10월 의회(마즐리스)가 열렸고, 연말에 헌법이 공포되었다. 그러나 1907년 영국–러시아 협상으로 이란은 북부(러시아)와 남동부(영국)의 세력권으로 나뉘었다. 1908년 새 샤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의회를 포격했으나 타브리즈 등지의 입헌파가 맞서 1909년 테헤란을 되찾았다. 결국 1911년 러시아군의 개입으로 의회가 해산되며 혁명은 좌절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0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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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이란
러시아
영국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91년 이란의 담배 불매 운동
이후 사건
1925년 팔레비 왕조 수립

이 사건이 든 테마

  • 제국주의와 세계 분할1839년 – 1914년

    탄지마트에서 사라예보까지 — 열강이 서아시아·인도·동남아시아·아프리카·태평양을 나누어 가지고, 그곳 사람들이 개혁과 저항으로 맞선 7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