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874년 5월 – 12월

일본의 타이완 출병

다른 이름: 타이완 출병, 모란사 사건

류큐 어민이 타이완 원주민에게 살해된 일을 구실로 일본이 타이완 남부에 군대를 보냈다. 메이지 정부의 첫 해외 출병이었다.

타이완 출병을 이끈 사이고 쓰구미치(가운데)와 타이완 원주민 지도자들 — 1874년
타이완 출병을 이끈 사이고 쓰구미치(가운데)와 타이완 원주민 지도자들 — 1874년

J.W. Davidson · Public domain · 원본

1871년 표류한 류큐(미야코섬) 사람 50여 명이 타이완 남부 원주민에게 살해되었다. 일본은 류큐 사람을 자국민이라 주장하며, 청이 원주민 땅은 다스리지 않는 곳이라고 답한 것을 빌미로 1874년 5월 사이고 쓰구미치가 이끄는 3천여 명을 상륙시켰다. 전투보다 풍토병으로 죽은 병사가 훨씬 많았다. 10월 영국의 중재로 청이 50만 냥을 내고 출병을 "백성을 지키려는 의거"로 인정하자 일본은 물러났고, 이는 류큐가 일본에 속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874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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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본 · 침공국 — 메이지 일왕
청 — 동치제
류큐

관련 인물

  • 오쿠보 도시미치1830년 – 1878년

    외교관 · 사쓰마 출신으로 메이지 정부를 이끈 정치가. 폐번치현과 식산흥업을 밀었고, 정한론에 반대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74년 자유 민권 운동
이후 사건
1875년 운요호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동아시아의 개항과 근대화1839년 – 1901년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