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10년 8월 29일 (귀족령) · 10월 7일 (수작식)

조선 귀족령과 작위 수여

다른 이름: 조선 귀족, 경술국적

병합을 공포한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조선 귀족령을 내리고 10월 대한제국의 황족·대신 등 76명에게 작위와 은사공채를 주었다.

일본은 병합 조약을 공포한 날 조선 귀족령을 함께 내려, 대한제국의 황족과 고위 관료에게 일본의 작위를 주기로 했다. 1910년 10월 7일 수작식이 열렸고, 처음 작위를 받은 사람은 후작 6명, 백작 3명, 자작 22명, 남작 45명으로 모두 76명이었다. 작위와 함께 작위와 공로에 따라 2만 5천 엔에서 50만 엔이 넘는 은사공채가 주어졌고, 그 합계는 450만 엔을 넘었다.

병합 조약 체결에 앞장선 대신 여덟 명 — 이완용·윤덕영·민병석·고영희·박제순·조중응·이병무·조민희 — 은 「경술국적」이라 불리며, 모두 이때 작위를 받았다. 총리대신 이완용은 백작이 되었다가 1920년 후작으로 올랐다.

한규설·유길준·김석진·윤용구·홍순형·민영달·조경호·조정구 여덟 명은 작위를 거절하거나 돌려보냈다. 김석진은 작위를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작위는 아들에게 이어져,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 귀족이 된 사람은 모두 150명이 넘는다.

지도에서 보기

191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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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제강점기 조선 —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일본 · 통치국 — 메이지 일왕

관련 인물

  • 이완용1858년 – 1926년

    관련자 · 을사늑약에 찬성한 을사오적의 하나. 총리대신으로 한일 신협약·기유각서·병합 조약에 서명했다

  • 박제순1858년 – 1916년

    관련자 · 외부대신으로 을사늑약에 서명한 을사오적의 하나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10년 국권 피탈(경술국치)

이 사건이 든 테마

  • 친일과 청산1905년 – 2010년

    을사늑약에서 『친일인명사전』까지 — 국권 침탈에 협력한 이들이 받은 것, 그리고 광복 뒤 그것을 따지려 한 노력의 좌절과 재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