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17세기 후반 – 18세기

고증학

다른 이름: 고거학, 건가학파, 경세치용

명이 망한 뒤 고염무 등이 경세치용을 내세우며 옛 문헌을 증거로 따지는 방법을 열었고, 이것이 18세기 청에서 경전을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고증학으로 꽃피었다.

고염무의 초상 — 『청대 학자 상전』
고염무의 초상 — 『청대 학자 상전』

葉衍蘭輯,黃小泉摹繪, · Public domain · 원본

명이 망하자 고염무·황종희 같은 학자들은 그 까닭을 공허한 논의에 빠진 양명학의 말류에서 찾고, 실제 사회에 쓸모 있는 학문(경세치용)을 주장했다. 고염무는 『일지록』에서 옛 문헌을 하나하나 대조해 증거를 대는 방법을 보였고, 황종희는 『명이대방록』에서 군주의 전제를 비판했다. 이 방법은 18세기 건륭·가경 연간에 경전의 글자·음·제도를 실증적으로 따지는 고증학(건가학파)으로 꽃피었다.

청의 문자의 옥 아래 학자들이 정치 논의보다 문헌 연구에 몰두한 것도 한 까닭으로 본다. 『사고전서』 편찬을 고증학자들이 이끌었고, 고증학은 베이징을 다녀온 조선 학자에게도 영향을 주어 김정희의 금석학으로 이어졌다.

지도에서 보기

167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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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청 — 강희제

관련 인물

  • 고염무1613년 – 1682년

    주도자 · 명 말 청 초의 학자. 청에 벼슬하지 않고 경세치용을 내세웠으며, 『일지록』으로 고증학의 길을 열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654년 나선 정벌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