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17세기 후반 – 18세기
고증학
다른 이름: 고거학, 건가학파, 경세치용
명이 망한 뒤 고염무 등이 경세치용을 내세우며 옛 문헌을 증거로 따지는 방법을 열었고, 이것이 18세기 청에서 경전을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고증학으로 꽃피었다.

葉衍蘭輯,黃小泉摹繪, · Public domain · 원본
명이 망하자 고염무·황종희 같은 학자들은 그 까닭을 공허한 논의에 빠진 양명학의 말류에서 찾고, 실제 사회에 쓸모 있는 학문(경세치용)을 주장했다. 고염무는 『일지록』에서 옛 문헌을 하나하나 대조해 증거를 대는 방법을 보였고, 황종희는 『명이대방록』에서 군주의 전제를 비판했다. 이 방법은 18세기 건륭·가경 연간에 경전의 글자·음·제도를 실증적으로 따지는 고증학(건가학파)으로 꽃피었다.
청의 문자의 옥 아래 학자들이 정치 논의보다 문헌 연구에 몰두한 것도 한 까닭으로 본다. 『사고전서』 편찬을 고증학자들이 이끌었고, 고증학은 베이징을 다녀온 조선 학자에게도 영향을 주어 김정희의 금석학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