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673–1681 (삼번의 난) · 1683 (타이완)

강희제의 삼번의 난 평정과 타이완 정복

다른 이름: 삼번의 난, 강희제의 치세

강희제는 1673년 일어난 오삼계 등의 삼번의 난을 8년 만에 평정하고, 1683년 정씨 세력이 다스리던 타이완을 차지해 청의 중국 지배를 굳혔다.

조복을 입은 강희제의 초상 — 청 궁정 화가 (강희 연간 후기)
조복을 입은 강희제의 초상 — 청 궁정 화가 (강희 연간 후기)

Anonymous Unknown author Qing Dynasty Court Painter · Public domain · 원본

1661년 어린 나이에 즉위한 강희제는 1669년 권신 오보이를 몰아내고 친정에 나섰다. 그 무렵 남쪽에는 청의 중국 정복을 도운 한인 장수 셋이 번왕으로 큰 땅과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윈난의 오삼계, 광둥의 상가희, 푸젠의 경정충의 삼번이다. 1673년 강희제가 번을 없애기로 하자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켰고 다른 둘도 따라, 한때 양쯔강 남쪽이 거의 다 넘어갔다. 강희제는 한인 녹영군까지 동원해 1681년 난을 평정했다.

타이완에서는 명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정성공이 1662년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근거지를 세웠고, 그 아들 정경은 삼번의 난에 호응했다. 청은 해안 주민을 안쪽으로 옮기는 천계령으로 정씨 세력을 고립시켰고, 1683년 시랑의 함대가 펑후 해전에서 이기자 정씨가 항복했다. 이듬해 타이완을 푸젠성에 딸린 부로 두어, 타이완 본섬이 처음으로 중국 왕조의 행정 구역에 들어갔다. 이어 해금을 풀어 민간의 해외 무역을 다시 허락했다.

강희제는 이어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고, 준가르를 쳐서 외몽골(할하)을 아울렀다. 『강희자전』 편찬 등 학문을 장려했으며, 1712년에는 그해의 장정 수를 기준으로 정세(丁稅)를 고정해 더 늘리지 않기로 했다. 같은 해 청은 조선과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국경을 정했다.

지도에서 보기

167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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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청 · 승전국 — 강희제
정씨 왕국 (동녕) · 항복
관련 장소
질란디아 요새

관련 인물

  • 강희제 (청 성조)1654년 – 1722년

    군주 · 청의 제4대 황제(재위 1661–1722).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타이완을 차지했으며,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고 몽골을 아울렀다

  • 오삼계1612년 – 1678년

    주도자 · 명의 장수. 1644년 산하이관을 열어 청군을 끌어들였고, 윈난의 번왕이 되었다가 1673년 삼번의 난을 일으켰다

  • 정성공1624년 – 1662년

    관련자 · 명을 다시 일으키려 청에 맞선 해상 세력의 지도자. 일본 히라도에서 태어났고, 1662년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타이완을 근거지로 삼았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670년 고증학
이후 사건
1678년 초량 왜관 설치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