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65년 6월 22일

한일 기본 조약

거센 반대 시위(6·3 시위) 속에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맺었다.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은 담기지 않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전시된 한일 기본 조약 사본 — 이동원·김동조, 시나 에쓰사부로·다카스기 신이치의 서명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전시된 한일 기본 조약 사본 — 이동원·김동조, 시나 에쓰사부로·다카스기 신이치의 서명

Motoko C. K. · CC0 · 원본

경제 개발 자금이 필요했던 정부는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서둘렀고, 미국도 한·미·일 협력을 위해 이를 바랐다. 1962년 김종필·오히라 메모로 청구권 자금의 규모를 비밀리에 합의했다. 1964년 "굴욕 외교"에 반대하는 시위가 크게 일어나자 정부는 6월 3일 서울에 계엄을 선포했다(6·3 시위).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한일 기본 조약과 부속 협정이 조인되었다. 일본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은 담기지 않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같은 과제가 남았다.

지도에서 보기

196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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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대한민국 · 체결국 — 대통령 박정희
일본 · 체결국 — 쇼와 일왕

관련 인물

  • 박정희1917년 – 1979년

    관련자 · 제5~9대 대통령 (1963–1979). 5·16 군사 정변을 일으켰고,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유신 체제를 이끌었다. 10·26 사태로 숨졌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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