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32년 5월 – 1940년 9월

임시 정부의 피란길

다른 이름: 임시 정부의 이동, 임시 정부 이동 시기

윤봉길 의거로 일본의 추적을 받게 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1932년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전장·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을 거쳐 1940년 충칭에 자리 잡았다. 8년 동안 중국 대륙을 옮겨 다니면서도 정부를 이어 갔다.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 정부 옛 청사 — 1932년 상하이를 떠난 임시 정부가 머문 곳, 오늘의 기념관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 정부 옛 청사 — 1932년 상하이를 떠난 임시 정부가 머문 곳, 오늘의 기념관

Simon Wade · CC BY-SA 4.0 · 원본

1932년 4월 윤봉길 의거 직후 일본은 상하이의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였고, 임시 정부는 5월 항저우로 옮겼다. 의거를 이끈 김구에게는 큰 현상금이 걸려, 그는 자싱과 하이옌에서 중국인 추푸청 일가의 도움으로 숨어 지냈다. 1935년 임시 정부는 난징 가까운 전장으로 옮겼고, 김구는 이동녕 등과 한국 국민당을 만들어 정부를 다시 추슬렀다.

1937년 중일 전쟁이 터져 일본군이 난징으로 다가오자, 임시 정부는 그해 11월 요인과 가족 100여 명을 이끌고 창사로 옮겼다. 1938년 일본군이 다시 다가오자 7월 광저우로, 10월 광저우가 함락되기 직전 류저우로 피했고, 1939년 5월 쓰촨성 치장을 거쳐 1940년 9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임시 수도 충칭에 자리 잡았다. 짐과 가족을 배와 기차, 트럭에 싣고 떠돈 이 길에서 임시 정부는 한 번도 문을 닫지 않았다.

지도에서 보기

1932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 — 국무위원회 주석 이동녕
관련 장소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청사,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청사, 자싱 김구 피난처, 전장, 창사 남목청, 광저우, 류저우 대한민국 임시 정부 활동 터, 치장, 충칭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청사

관련 인물

  • 김구1876년 – 1949년

    핵심 인물 · 호는 백범. 한인 애국단을 만들고 임시 정부 주석으로 한국광복군을 이끌었다. "백범일지"

  • 이동녕1869년 – 1940년

    핵심 인물 · 신민회 회원. 서간도에서 신흥 강습소를 세우는 데 참여했고, 임시 의정원 의장과 임시 정부 국무령·주석을 지냈다

하위 사건 1건

  1. 1938년 5월 창사 남목청에서 독립운동 세 정당의 통합을 논의하던 자리에 조선 혁명당원 이운환이 총을 쏘아, 김구가 가슴에 총탄을 맞고 크게 다쳤다. 김구는 살아났지만 총알은 평생 몸에 남았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32년 만주국 수립

이 사건이 든 테마

  • 대한민국 임시 정부1919년 – 1945년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1919년부터 1945년까지 — 수립과 위기, 한인 애국단의 의거, 중국 대륙을 옮겨 다닌 피란길, 한국광복군과 환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