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25년 10월 5–16일 (서명 12월 1일)

로카르노 조약

다른 이름: 로카르노 정신

독일·프랑스·벨기에가 서로의 국경을 존중하기로 하고 영국·이탈리아가 이를 보증했다. 독일은 이듬해 국제 연맹에 들어가 국제 협조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로카르노 회의의 독일 슈트레제만·영국 오스틴 체임벌린·프랑스 브리앙 외무 장관 (왼쪽부터) — 1925년 10월
로카르노 회의의 독일 슈트레제만·영국 오스틴 체임벌린·프랑스 브리앙 외무 장관 (왼쪽부터) — 1925년 10월

작자 미상 · CC BY-SA 3.0 de · 원본

루르 위기 뒤 독일 외무 장관 슈트레제만은 베르사유 조약을 따르면서 협상으로 독일의 지위를 되찾는 길을 택했다. 1925년 10월 스위스 로카르노에 독일·프랑스·벨기에·영국·이탈리아·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대표가 모여 일곱 개의 조약에 합의했고, 12월 1일 런던에서 서명했다.

중심인 라인 조약에서 독일은 프랑스·벨기에와의 서부 국경과 라인란트의 비무장을 스스로 받아들였고, 영국과 이탈리아가 이를 보증했다. 그러나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와의 동부 국경은 중재 조약에 그쳐 불씨로 남았다. 1926년 독일은 국제 연맹 상임 이사국이 되었고, 슈트레제만과 프랑스의 브리앙은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이 "로카르노 정신"은 부전 조약으로 이어졌지만 1936년 히틀러의 라인란트 진주로 깨졌다.

지도에서 보기

192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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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독일 · 체결국
프랑스 · 체결국
벨기에 · 체결국
영국 · 체결국
이탈리아 · 체결국
폴란드 · 체결국
체코슬로바키아 · 체결국
스위스 · 개최국
관련 장소
로카르노

관련 인물

  • 구스타프 슈트레제만1878년 – 1929년

    외교관 ·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1923)·외무 장관(1923–1929).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고 로카르노 조약으로 독일을 국제 사회에 되돌렸다

  • 아리스티드 브리앙1862년 – 1932년

    외교관 · 프랑스 총리를 여러 차례 지낸 정치가. 외무 장관으로 로카르노 조약과 부전 조약을 이끌었다

  • 베니토 무솔리니1883년 – 1945년

    외교관 ·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을 만들고 로마 진군으로 총리(1922–1943)가 된 독재자. 에티오피아를 침공하고 히틀러와 손잡았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928년 부전 조약

이 사건이 든 테마

  • 대공황과 전체주의1919년 – 1939년

    워싱턴 회의에서 폴란드 침공까지 — 국제 협조의 시대가 대공황으로 무너지고, 파시즘·나치즘·스탈린 체제가 일어나 다시 세계 대전으로 치달은 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