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32년 5월 15일

5·15 사건

다른 이름: 五・一五事件

1932년 5월 15일 해군 청년 장교들이 총리 관저를 습격해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정당 내각 시대가 끝났다.

이누카이 총리의 피격을 알리는 『도쿄 아사히 신문』 호외 — 1932년 5월 15일
이누카이 총리의 피격을 알리는 『도쿄 아사히 신문』 호외 — 1932년 5월 15일

Tokyo Asahi Shimbun · Public domain · 원본

대공황과 농촌의 궁핍 속에서 정당과 재벌이 나라를 망친다고 본 군인과 우익은 "국가 개조"를 외치며 테러를 벌였다. 1932년 5월 15일 해군 청년 장교와 육군 사관 후보생들이 총리 관저에 들어가, 만주국 승인에 신중했던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쏘았다.

뒤를 이어 조선 총독을 지낸 해군 대장 사이토 마코토가 거국 일치 내각을 세우면서, 1924년부터 이어진 정당 내각은 패전 때까지 다시 서지 못했다. 범인들이 가벼운 형을 받고 동정까지 얻으면서 군부의 정치 개입은 더 거세졌다.

지도에서 보기

193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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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본 — 쇼와 일왕
관련 장소
도쿄

관련 인물

  • 이누카이 쓰요시1855년 – 1932년

    관련자 · 호헌 운동을 이끈 정당 정치가로, 정우회 총재로서 총리(1931–1932)가 되었다. 5·15 사건 때 해군 청년 장교들에게 관저에서 살해되었다

  • 사이토 마코토1858년 – 1936년

    관련자 · 3·1 운동 뒤 부임한 제3대·제5대 조선 총독. "문화 통치"를 내세웠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32년 만주국 수립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