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라워호와 메이플라워 서약
다른 이름: 메이플라워 서약, 필그림 파더스, 플리머스 식민지
영국 국교회의 박해를 피한 청교도(순례자)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아메리카에 건너가, 상륙 전 스스로 정부를 세우고 법에 따르기로 서약했다.

Jean Leon Gerome Ferris · Public domain · 원본
영국 국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청교도 분리파는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 레이던에 머물다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로 가기로 했다. 1620년 9월 102명을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잉글랜드 플리머스를 떠나 11월 케이프코드에 닿았다. 배에서 성인 남자 41명은 "시민 정치 단체"를 만들고 공정한 법에 따르기로 한 메이플라워 서약에 서명했다. 이들이 세운 플리머스 식민지에서는 첫겨울에 절반 가까이가 죽었으나, 왐파노아그족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이듬해 가을 수확 축제를 열었다(추수 감사절의 기원).
1630년부터는 존 윈스럽이 이끄는 청교도 1,000여 명이 매사추세츠만 식민지를 세워 보스턴을 열었다. 뉴잉글랜드의 식민지들은 주민 회의(타운 미팅)와 식민지 의회로 스스로 다스리는 전통을 키웠고, 이는 뒷날 독립 혁명의 바탕이 되었다. 같은 무렵 조선의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