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도시의 성장과 한자 동맹
다른 이름: 한자 동맹, 길드, 자치 도시
11세기 뒤 농업 생산과 원거리 무역이 늘자 유럽 곳곳에 상공업 도시가 자라 영주에게서 자치권을 얻었고, 북해·발트해의 독일 도시들은 한자 동맹을 맺었다.

Christian Wolf ( www.c-w-design.de ) · CC BY-SA 3.0 de · 원본
11세기부터 삼포제와 무거운 쇠 쟁기로 농업 생산이 늘고, 십자군 전쟁으로 동방과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상업이 되살아났다. 지중해에서는 베네치아·제노바·피사가 동방의 향신료·비단을 들여왔고, 북쪽에서는 플랑드르의 모직물과 발트해의 곡물·목재·청어가 오갔으며, 그 사이 프랑스 샹파뉴에서는 큰 정기 시장이 열렸다.
상공업으로 부유해진 도시는 영주에게 돈을 내거나 싸워서 특허장을 얻어 자치권을 누렸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게 한다"는 말처럼 도시로 달아난 농노가 1년 하루를 살면 자유를 얻기도 했다. 상인과 수공업자는 길드(동업 조합)를 만들어 생산과 가격을 통제했고, 수공업 길드는 장인·직인·도제의 위계를 두었다.
뤼베크를 중심으로 한 북독일 도시들은 한자 동맹을 맺어 런던·브뤼허·베르겐·노브고로드에 상관을 두고 북해·발트해 무역을 독점했으며, 1370년에는 덴마크와 싸워 이겼다. 도시의 성장으로 화폐 경제가 퍼지면서 장원제가 흔들렸고, 시민 계층은 왕과 손잡아 봉건 제후를 누르는 세력이 되었다. 같은 때 고려의 벽란도에는 송·아라비아 상인이 드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