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크스부르크 화의
다른 이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 화의
1555년 신성 로마 제국의 아우크스부르크 제국 의회에서 제후가 영지의 종교를 가톨릭과 루터파 가운데 고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의 신앙 자유와 칼뱅파는 인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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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5세는 루터파 제후들이 맺은 슈말칼덴 동맹을 슈말칼덴 전쟁(1546–1547)에서 꺾었으나, 작센 선제후 모리츠가 등을 돌리자 신교를 누를 수 없었다. 1555년 9월 25일 아우크스부르크 제국 의회는 제후와 제국 도시가 가톨릭과 루터파 가운데 하나를 고르고, 영민은 그 종교를 따르거나 떠나게 했다. 이 원칙은 뒤에 "그 땅의 지배자가 그 땅의 종교를 정한다"는 말로 요약되었다.
루터파가 처음으로 공인되었지만 신앙은 개인이 아닌 제후의 선택이었고, 칼뱅파는 빠졌다. 이 한계는 뒤의 30년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듬해 카를 5세는 물러나며 에스파냐와 네덜란드는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오스트리아와 황제 자리는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넘겨 합스부르크 가문이 둘로 나뉘었다. 같은 해(1555) 조선에서는 을묘왜변이 일어나 비변사가 상설 기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