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1557년 무렵

포르투갈의 마카오 거주

포르투갈 상인이 명의 허락을 받아 주장강 어귀의 마카오에 머물기 시작했다. 마카오는 중국·일본·유럽을 잇는 무역과 크리스트교 선교의 거점이 되었다.

해적 소탕을 도운 대가 등으로 포르투갈 상인은 1557년 무렵 마카오에 머물 허락을 받고 해마다 땅세를 냈다. 마카오는 광저우의 비단과 일본 나가사키의 은을 맞바꾸는 중계 무역으로 번영했고, 마테오 리치 등 예수회 선교사가 중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었다. 포르투갈은 1887년 청과 맺은 조약으로 마카오를 영구히 다스릴 권리를 얻었고, 마카오는 1999년 중국에 반환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55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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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포르투갈령 마카오 · 성립
명 — 가정제
관련 장소
마카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565년 마닐라 갤리온 무역

이 사건이 든 테마

  • 대항해 시대1415년 – 1600년

    세우타 점령부터 마닐라 갤리온까지 — 유럽의 배가 대양을 건너 세계를 하나의 바닷길로 이은 200년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