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위병
다른 이름: 붉은 8월, 파사구, 사구 타파, 대교류, 홍위병 운동
1966년 8월 18일 마오쩌둥이 톈안먼 광장에서 홍위병을 처음 접견한 뒤 학생 홍위병 운동이 전국으로 번졌다. 그해 11월까지 여덟 차례 접견에 1,100만–1,300만 명이 베이징을 찾았고, 홍위병은 "네 가지 낡은 것"을 부순다며 폭력을 휘둘렀다.

孟昭瑞 · Public domain · 원본
1966년 5월 말 칭화 대학 부속 중학의 학생들이 처음 "홍위병"을 자처했고, 8월 1일 마오쩌둥이 이들을 지지하는 편지를 쓰자 전국의 학교에 홍위병 조직이 생겼다. 8월 18일 톈안먼 광장의 첫 대집회에서 마오쩌둥은 홍위병 완장을 찼고, 11월 26일까지 여덟 차례 열린 접견에 공식 집계로 1,100만–1,300만 명이 무료 기차를 타고 "대교류"로 베이징에 왔다.
홍위병은 "옛 사상·옛 문화·옛 풍속·옛 습관"(사구)을 부순다며 거리 이름을 바꾸고 사찰과 문화재, 개인의 책과 집을 부수었다. 학교에서는 학생이 교사를 때려 숨지게 하는 일이 잇따랐고, 1966년 8–9월 베이징에서만 1,700여 명이 맞아 죽었다는 공식 통계가 있다("붉은 8월"). 1967–1968년에는 홍위병과 조반파가 파벌로 갈라져 총과 대포까지 동원한 무장 투쟁을 벌였다.
통제가 어려워지자 마오쩌둥은 1968년 7월 노동자 선전대를 대학에 보내 홍위병을 해산시켰고, 12월부터 청년들을 농촌으로 보냈다(상산하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