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제의 전성기
다른 이름: 염철 전매, 유교 국교화
한 무제가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고 흉노 정벌·남월 정복·고조선 원정으로 영토를 크게 넓혔다. 늘어난 전비는 소금·철 전매와 균수·평준법으로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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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경제 때 백성의 부담을 덜고 나라 살림을 넉넉히 한 데(문경지치) 이어, 무제(재위 기원전 141–87)는 황제 중심의 체제를 굳혔다.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 오경박사를 두고(기원전 136) 도읍에 태학을 세웠으며(기원전 124), 지방에서 효성스럽고 청렴한 인재를 추천받아 관리로 뽑았다(향거리선).
밖으로는 위청·곽거병을 보내 흉노를 고비 사막 북쪽으로 몰아내고 하서 회랑에 군을 두었으며, 장건을 서역에 보내 비단길을 열었다. 기원전 111년 남월을 정복해 베트남 북부까지 군을 두었고, 기원전 109년 고조선을 쳐서 이듬해 멸망시키고 그 땅에 한 군현을 설치했다.
거듭된 원정으로 재정이 바닥나자 소금과 철을 나라가 독점해 팔고(염철 전매, 술도 한때 전매), 물자를 옮겨 팔고 물가를 조절하는 균수법·평준법을 시행했으며 오수전을 주조했다. 상인과 백성의 부담은 커졌고, 무제가 죽은 뒤 기원전 81년 조정에서 전매제를 두고 염철 논쟁이 벌어졌다(『염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