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 정부의 타이완 철수
다른 이름: 국민당의 타이완 철수, 국부천대, 구닝터우 전투
내전에서 진 중화민국 정부가 1949년 12월 타이베이로 옮겨 갔다. 군인과 공무원, 그 가족 등 100만 명 남짓이 대륙에서 건너왔고, 장제스는 1950년 3월 타이베이에서 총통에 복귀했다.

Winter 2011 · Public domain · 원본
난징을 잃은 국민 정부는 광저우·충칭·청두로 옮겨 다녔고, 1949년 12월 7일 행정원이 타이베이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장제스는 12월 10일 청두에서 타이완으로 날아갔다. 이미 1949년 초부터 고궁 박물원의 유물과 중앙 은행의 금이 타이완으로 실려 갔고, 군인·공무원과 그 가족 등 대략 100만–200만 명(추정이 엇갈린다)이 바다를 건넜다.
1949년 10월 진먼다오 구닝터우에 상륙한 해방군을 국민당군이 물리쳐 진먼·마쭈는 중화민국 땅으로 남았으나, 1950년 5월 하이난섬은 해방군에 넘어갔다. 장제스는 1950년 3월 1일 총통에 복귀했다. 6월 6·25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이 제7 함대를 타이완 해협에 보내 해방군의 타이완 공격 계획은 멈추었다.
타이완에서는 1949년 5월 선포된 계엄령이 1987년까지 이어졌고, 중화민국은 1971년까지 유엔의 중국 대표권을 지켰다.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완의 중화민국이 마주한 양안 관계는 이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