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기원전 753년 4월 21일 (전승의 날짜 — 바로가 셈한 해, 파릴리아 축제의 날)

로마 건국과 레무스의 죽음

다른 이름: 로마의 건국, 로마의 생일, 나탈레 디 로마, 레무스의 죽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전설)입니다.

로마의 건국 전설로, 리비우스의 『로마사』 1권과 오비디우스의 『로마의 축제일』이 전한다. 쌍둥이가 새 도시의 자리를 두고 새 점을 쳐 다투었고,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에 성벽의 고랑을 파자 이를 비웃으며 뛰어넘은 레무스를 죽이고 자기 이름을 딴 로마를 세웠다. 전승의 날짜는 기원전 753년 4월 21일이다.

카라치 형제(루도비코·아고스티노·안니발레)의 「로마 건국 이야기」 프리즈, 1589 – 1592년 — 볼로냐 팔라초 마냐니의 큰 방
카라치 형제(루도비코·아고스티노·안니발레)의 「로마 건국 이야기」 프리즈, 1589 – 1592년 — 볼로냐 팔라초 마냐니의 큰 방

Agostino Carracci / Ludovico Carracci / Annibale Carracci · Public domain · 원본

로마의 건국 전설로, 리비우스의 『로마사』 1권, 오비디우스의 『로마의 축제일』 4권, 플루타르코스의 『로물루스전』이 전한다. 쌍둥이는 자신들이 구조된 곳에 새 도시를 세우기로 했으나 누가 다스릴지를 두고 다투어, 로물루스는 팔라티노 언덕에서, 레무스는 아벤티노 언덕에서 새 점을 쳤다. 레무스가 먼저 독수리 여섯 마리를 보았고, 로물루스는 뒤에 열두 마리를 보았다.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 둘레에 성벽을 쌓으려 쟁기로 고랑(포메리움)을 파자, 레무스가 이를 비웃으며 뛰어넘었고 로물루스가 「누구든 내 성벽을 넘는 자는 이렇게 되리라」며 그를 죽였다고 리비우스는 적는다. 다툼 중에 죽었다는 이야기, 부하 켈레르가 죽였다는 이야기(오비디우스)도 있다. 로물루스는 자기 이름을 따 도시를 로마라 부르고, 도망자와 떠돌이를 받아들여 백성을 늘렸다고 한다. 뒤에 그는 폭풍 속에서 사라져 퀴리누스 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기원전 753년이라는 해는 기원전 1세기의 학자 바로가 셈한 것이 표준이 되었고, 고대에는 기원전 814년(티마이오스)·748년(파비우스 픽토르) 등 여러 설이 있었다. 4월 21일은 목자들의 축제 파릴리아의 날로, 지금도 로마의 생일로 기린다. 고고학은 팔라티노 언덕에 이 무렵 사람이 살았음을 보여 주지만, 한 사람이 하루에 도시를 세웠다는 증거는 없다.

지도에서 보기

기원전 75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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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장소
팔라티노 언덕, 로마

앞뒤 사건

이전 사건
기원전 770년 로물루스와 레무스와 늑대
이후 사건
기원전 753년 사비니 여인의 납치

이 사건이 든 테마

  • 로마 건국 신화기원전 1200년 – 1471년

    불타는 트로이를 빠져나온 아이네이아스에서 디도, 로물루스와 레무스, 사비니 여인, 루크레티아까지 — 로마인이 스스로 내세운 기원을 이야기 순서로 따라가며, 라비니움과 팔라티노 언덕의 유적, 『아이네이스』와 『로마사』, 아라 파키스와 카피톨리니의 암늑대상을 함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