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튀르크 전쟁과 베를린 회의
다른 이름: 베를린 회의 (1878), 산스테파노 조약
러시아가 발칸의 슬라브 민족을 돕는다며 오스만 제국과 싸워 이겼으나, 영국·오스트리아의 반대로 열린 베를린 회의에서 남하가 다시 막혔다.

Anton von Werner · Public domain · 원본
1876년 불가리아의 봉기를 오스만 제국이 가혹하게 진압하자, 범슬라브주의를 내건 러시아가 1877년 4월 24일 선전 포고했다. 러시아군은 플레벤 공방전 끝에 발칸산맥을 넘어 이스탄불 가까이까지 진격했고, 1878년 3월 산스테파노 조약으로 넓은 "대불가리아"를 러시아의 영향 아래 두었다.
러시아가 지중해로 나오는 것을 꺼린 영국과 오스트리아가 반발하자,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공정한 중재인"을 자처해 1878년 6–7월 베를린 회의를 열었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루마니아의 독립이 인정되었으나 불가리아는 작은 자치국으로 줄었고,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관리권을, 영국은 키프로스를 얻었다.
발칸에서 남하가 막힌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로 눈을 돌렸고, 영국과의 대립(그레이트 게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반도의 거문도 사건(1885)까지 이어졌다.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가 부딪힌 발칸은 "유럽의 화약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