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 왕국의 통일과 중계 무역
다른 이름: 류큐 왕국, 삼산 통일, 만국진량
오키나와의 세 나라(삼산)로 나뉘어 있던 류큐를 주잔의 쇼하시가 1429년 통일하고 슈리를 도읍으로 삼았다. 류큐는 명의 조공국으로서 명·일본·조선·동남아시아를 잇는 중계 무역으로 번영했다.

CEphoto, Uwe Aranas · CC BY-SA 3.0 · 원본
14세기 오키나와 섬에는 호쿠잔(북산)·주잔(중산)·난잔(남산)의 세 세력이 맞섰고, 1372년 주잔을 시작으로 셋 모두 명에 조공했다. 주잔의 쇼하시는 1416년 호쿠잔, 1429년 난잔을 무너뜨려 류큐를 하나로 묶고 슈리성을 왕궁으로 삼았다(제1 쇼씨 왕조).
명이 해금으로 민간 무역을 막자, 조공 무역의 특권을 가진 류큐가 그 틈을 메웠다. 명에서 받은 비단·도자기를 일본·조선·시암·믈라카·자와 등에 팔고, 동남아시아의 후추·소목 등을 명과 일본에 넘기는 중계 무역으로 크게 번영했다. 1458년 슈리성 정전에 건 종에는 류큐가 "만국의 다리(만국진량)"라고 새겼다. 1609년 일본 사쓰마번의 침공을 받은 뒤로는 청과 일본 양쪽에 속하다가 1879년 일본에 병합되었다(류큐 처분).
류큐는 1389년 고려에 처음 사신을 보냈고, 조선 초에도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토산물과 동남아시아 물품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