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 정벌
다른 이름: 대마도 정벌, 기해동정
왜구의 근거지를 치려고 이종무가 병선 200여 척으로 쓰시마를 공격했다. 뒤에 계해약조로 교역을 허락했다.

申叔舟 [撰] · Public domain · 원본
1419년 5월 왜구가 충청도 비인현과 황해도 해주를 노략질했다. 세종이 즉위한 이듬해였지만 군사권은 상왕 태종이 쥐고 있었고, 정벌도 태종이 주도했다. 그해의 간지를 따 기해동정이라고도 한다.
삼군 도체찰사 이종무는 병선 227척, 군사 1만 7천여 명을 이끌고 6월 거제도를 떠나 쓰시마에 닿았다. 왜구의 배 120여 척을 불태우거나 빼앗고 가옥 2천여 호를 태웠으나, 상륙전에서 복병을 만나 적지 않은 군사를 잃었다. 쓰시마 도주가 항복을 청하자 7월 초 군대를 돌렸다.
이후 조선은 강경책과 회유책을 함께 썼다. 부산포·제포·염포의 3포를 열어 교역을 허락했고, 1443년 계해약조로 세견선을 1년 50척, 세사미두를 200석으로 제한했다. 3포에 사는 일본인이 늘면서 뒷날 삼포왜란이 일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