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419년 6월(음력)

쓰시마 정벌

다른 이름: 대마도 정벌, 기해동정

왜구의 근거지를 치려고 이종무가 병선 200여 척으로 쓰시마를 공격했다. 뒤에 계해약조로 교역을 허락했다.

해동제국기의 쓰시마 지도 — 1471년 신숙주 편찬
해동제국기의 쓰시마 지도 — 1471년 신숙주 편찬

申叔舟 [撰] · Public domain · 원본

1419년 5월 왜구가 충청도 비인현과 황해도 해주를 노략질했다. 세종이 즉위한 이듬해였지만 군사권은 상왕 태종이 쥐고 있었고, 정벌도 태종이 주도했다. 그해의 간지를 따 기해동정이라고도 한다.

삼군 도체찰사 이종무는 병선 227척, 군사 1만 7천여 명을 이끌고 6월 거제도를 떠나 쓰시마에 닿았다. 왜구의 배 120여 척을 불태우거나 빼앗고 가옥 2천여 호를 태웠으나, 상륙전에서 복병을 만나 적지 않은 군사를 잃었다. 쓰시마 도주가 항복을 청하자 7월 초 군대를 돌렸다.

이후 조선은 강경책과 회유책을 함께 썼다. 부산포·제포·염포의 3포를 열어 교역을 허락했고, 1443년 계해약조로 세견선을 1년 50척, 세사미두를 200석으로 제한했다. 3포에 사는 일본인이 늘면서 뒷날 삼포왜란이 일어났다.

지도에서 보기

141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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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침공국 — 세종
일본

관련 인물

  • 이종무1360년 – 1425년

    지휘관 · 조선 초의 장수. 1419년 쓰시마 정벌군을 이끌었다

  • 태종 이방원1367년 – 1422년

    주도자 · 조선 제3대 왕.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잡고 왕권을 다졌다

  • 세종1397년 – 1450년

    군주 · 조선 제4대 왕. 훈민정음을 만들고 과학 기구와 북방 개척을 이끌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420년 집현전 확대

이 사건이 든 테마

  • 송·명과 일본의 무사 정권960년 – 1500년

    문치주의의 송이 요·서하·금에 세폐를 주며 강남 개발과 성리학을 꽃피우고, 원을 몰아낸 명이 황제 독재와 해금·조공 체제로 동아시아 질서를 다시 짠 시대 — 일본은 가마쿠라·무로마치 막부의 무사 정권을 거쳐 전국 시대로, 한반도는 고려에서 조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