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443년

계해약조 체결

다른 이름: 계해조약

세종 때 쓰시마 도주와 약조를 맺어 일본과의 교역을 세견선 1년 50척, 세사미두 200석으로 제한했다.

조선의 대외 정책은 사대교린이었다. 명에는 정기·부정기 사절을 보내 조공하며 사대하고, 여진·일본에는 강경책과 회유책을 함께 쓰는 교린 정책을 폈다. 여진에는 4군 6진을 개척하는 한편 귀순을 받아 관직과 토지를 주고 경성·경원에 무역소를 열었다. 한양에는 명 사신을 위한 태평관, 여진의 북평관, 일본의 동평관을 두었다.

일본에는 쓰시마 정벌(1419)로 왜구의 근거지를 친 뒤, 1426년 부산포(동래)·제포(웅천)에 염포(울산)를 더해 3포를 열고 왜관을 두어 교역을 허락했다. 오가는 배가 늘자 1443년 계해약조로 세견선을 1년 50척, 세사미두를 200석으로 제한했다. 3포에 눌러사는 일본인이 늘어 1510년 삼포왜란이 일어났다.

지도에서 보기

144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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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체결국 — 세종
일본 · 체결국
관련 장소
부산

관련 인물

  • 세종1397년 – 1450년

    군주 · 조선 제4대 왕. 훈민정음을 만들고 과학 기구와 북방 개척을 이끌었다

  • 신숙주1417년 – 1475년

    외교관 · 집현전 학자로 훈민정음 창제를 도왔다. 일본에 다녀와 해동제국기를 지었고, 세조 때 영의정에 올랐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442년 칠정산 편찬
이후 사건
1444년 세종의 공법 실시

이 사건이 든 테마

  • 송·명과 일본의 무사 정권960년 – 1500년

    문치주의의 송이 요·서하·금에 세폐를 주며 강남 개발과 성리학을 꽃피우고, 원을 몰아낸 명이 황제 독재와 해금·조공 체제로 동아시아 질서를 다시 짠 시대 — 일본은 가마쿠라·무로마치 막부의 무사 정권을 거쳐 전국 시대로, 한반도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 부산1443년 – 1979년

    왜관과 개항의 항구 — 일본과 만나고 부딪힌 관문이자 6·25 전쟁 때의 임시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