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553년 7월(음력)

신라의 한강 하류 차지

진흥왕이 백제가 되찾은 한강 하류를 빼앗고 신주를 설치했다. 120년 이어진 나제 동맹이 깨졌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 한강 하류를 차지한 진흥왕이 세운 비석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 한강 하류를 차지한 진흥왕이 세운 비석

Hoangkid · CC BY-SA 3.0 · 원본

신라는 551년 고구려에게서 한강 상류를 얻은 데 이어, 553년 7월 백제가 되찾은 한강 하류까지 빼앗았다. 이곳에 신주를 두고 금관가야 왕족 출신 김무력을 군주로 삼았다.

한강 유역은 인구가 많고 땅이 기름졌으며, 서해안의 당항성(화성)을 통해 중국과 직접 오갈 수 있는 길목이었다. 그때까지 고구려나 백제를 거쳐야 했던 신라는 이제 스스로 중국과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성장한 신라가 삼국 통일의 발판을 마련한 사건으로 꼽힌다.

성왕은 그해 10월 딸을 진흥왕에게 시집보냈지만, 이듬해 가야·왜와 함께 관산성을 쳤다가 전사했다.

지도에서 보기

55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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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신라 · 승전국 — 진흥왕
백제 · 패전국 — 성왕

관련 인물

  • 진흥왕534년 – 576년

    군주 · 신라 제24대 왕. 한강 유역과 대가야를 차지하고 순수비를 세웠으며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만들었다

  • 성왕554년

    군주 · 백제 제26대 왕.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으며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했다

  • 김무력

    관련자 · 금관가야 왕족 출신의 신라 장군, 김유신의 할아버지. 신주 군주로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군을 무찔렀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554년 관산성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