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분쟁
다른 이름: 중소 대립, 중소 국경 분쟁, 전바오섬 사건, 진보도 사건, 다만스키섬 사건
스탈린 비판과 평화 공존 노선을 두고 벌어진 중국과 소련의 갈등이 1960년 소련 전문가 철수, 1960년대의 공개 논쟁을 거쳐 1969년 우수리강 전바오섬의 무력 충돌로 번졌다. 이 대립은 중국이 미국에 다가가는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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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중소 우호 동맹 조약을 맺은 두 나라는 1950년대 내내 긴밀했다. 그러나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과 서방과의 평화 공존 노선을 마오쩌둥은 "수정주의"라고 보았고, 1958년 소련의 장파 무선국·연합 함대 제안과 진먼 포격, 1959년 소련의 핵 기술 지원 중단과 중인 국경 분쟁에서의 중립으로 골이 깊어졌다. 1960년 7월 소련은 중국에 와 있던 전문가 1,000여 명을 한꺼번에 불러들였다.
1963–1964년 두 당은 공개서한과 "9평"으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주도권을 다투었고, 중국은 1964년 10월 첫 원자 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1969년 3월 2일과 15일 우수리강의 전바오섬(다만스키섬)에서 두 나라 군대가 충돌해 양쪽 합쳐 100명 안팎 또는 그 이상이 죽었고(집계가 엇갈린다), 8월에는 신장의 국경에서도 충돌했다. 소련의 핵 공격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중국은 전국에 방공호를 파고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소련을 주적으로 보게 된 중국은 미국과의 화해에 나서 1971년 키신저의 비밀 방문과 1972년 닉슨의 방중으로 이어졌다. 두 나라의 관계는 1989년 고르바초프의 베이징 방문으로 정상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