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581 / 589

수의 중국 통일과 과거제

다른 이름: 수의 통일, 과거제의 시작

수 문제(양견)가 581년 수를 세우고 589년 남조의 진을 멸망시켜 약 300년 만에 중국을 다시 통일했다. 시험으로 관리를 뽑는 과거제를 처음 실시했다.

수 문제 — 염립본의 것으로 전하는 「역대제왕도권」의 한 부분
수 문제 — 염립본의 것으로 전하는 「역대제왕도권」의 한 부분

Yan Li-pen · Public domain · 원본

북주의 외척 양견은 581년 어린 황제에게서 자리를 물려받아 수를 세우고, 장안 곁에 새 도성 대흥성을 지었다. 589년 강남의 진을 멸망시켜 서진 이후 약 300년 동안의 분열을 끝냈다. 북조의 균전제와 부병제를 이어받고, 개황율령을 반포했으며, 중앙에는 3성 6부의 틀을 갖추었다.

수 문제는 문벌 귀족이 관직을 대물림하던 9품중정제를 없애고, 587년 무렵 학과 시험으로 관리를 뽑는 과거제를 처음 실시했다. 과거제는 당·송을 거쳐 1905년 청이 폐지할 때까지 1,300여 년 이어졌고, 고려 광종(958)과 베트남도 받아들였다. 진사과가 생긴 것은 양제 때로 본다.

통일한 수는 북쪽 돌궐을 동서로 갈라 누르고, 동쪽의 고구려에도 복속을 요구했다. 598년 고구려 영양왕이 요서를 먼저 치자 수 문제는 30만 대군을 보냈으나 물러났다. 고구려와의 전쟁은 아들 양제 때 더 커졌다.

지도에서 보기

58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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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수 · 통일 — 문제
진 (남조) · 멸망
관련 장소
장안

관련 인물

  • 수 문제541년 – 604년

    군주 · 수의 건국자(재위 581–604). 북주를 이어 수를 세우고 589년 남조의 진을 멸망시켜 중국을 다시 통일했다. 과거제를 처음 시행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598년 고구려와 수의 전쟁

이 사건이 든 테마

  • 수·당과 동아시아 문화권317년 – 979년

    남북조의 분열과 굽타 왕조에서 수·당의 통일 제국을 거쳐 송의 건국까지 — 율령·불교·유교·한자를 나눈 동아시아 문화권이 짜이고, 한반도와 일본이 그 틀로 고대 국가를 완성한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