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의 변
다른 이름: 토목보의 변
1449년 오이라트의 에센이 쳐들어오자 명의 정통제가 환관 왕진의 권유로 친정에 나섰다가 토목보에서 크게 지고 사로잡혔다. 우겸이 새 황제를 세워 베이징을 지켰고, 명은 이후 북방에서 수세로 돌아섰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영락제 뒤 몽골 고원에서는 서쪽의 오이라트가 강해져, 에센이 몽골 여러 부족을 묶었다. 조공 무역의 조건을 두고 명과 다투던 에센이 1449년 쳐들어오자, 젊은 정통제는 환관 왕진의 권유로 50만이라 불린 대군을 이끌고 친정에 나섰다. 그러나 준비 없이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베이징 서북쪽의 토목보에서 포위되어 크게 지고 사로잡혔다.
병부 시랑 우겸은 남쪽으로 옮기자는 의견을 물리치고 황제의 아우를 경태제로 세워 베이징을 지켜 냈다. 풀려나 돌아온 정통제는 1457년 정변으로 다시 즉위했다. 토목의 변 뒤 명은 몽골 원정을 그만두고 수비로 돌아서, 오늘 남아 있는 벽돌 만리장성의 대부분을 이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