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433년 – 1449년
4군 6진 개척
최윤덕이 압록강 상류에 4군을, 김종서가 두만강 하류에 6진을 두어 오늘날 국경선의 바탕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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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두만강 유역에 사는 여진은 자주 국경을 넘어 노략질했다. 세종은 이들을 몰아내고 영토를 넓히는 북진 정책을 폈다.
1433년 최윤덕이 압록강 지류인 파저강 일대의 여진을 정벌했고, 여연·자성·무창·우예의 4군을 두었다. 김종서는 1434년부터 두만강 하류에 종성·온성·회령·경원·경흥·부령의 6진을 차례로 설치했다. 이로써 압록강에서 두만강에 이르는 오늘날 국경선이 거의 확정되었다.
조선은 삼남 지방 백성을 이곳으로 옮겨 살게 하는 사민 정책을 펴고, 그 지역 사람을 토관으로 뽑아 다스리게 했다(토관 제도). 여진에게는 무역소와 한양의 북평관에서 교역을 허락하고, 귀순한 사람에게 관직과 토지를 주는 회유책도 함께 썼다. 다만 4군은 지키기 어려워 단종·세조 때 폐지되었다(폐사군).

